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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LEET 독서/문학, 미학

탈식민주의 문학 [2012학년도 MEET/미학]

by Gosamy 2021.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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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식민주의, 제국주의에 의해 분열된 아프리카. 이들의 침략 역사는 현재까지도 질병, 기아, 정치적 부패의 가장 큰 원인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이와 관련된 다음 글은 Homi K. Bhabha 의 주장에 해당한다.

 

  최근 탈식민주의 문학 연구에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 가운데 하나는 양가성 개념이다. 원래 양가성은 어떤 것과 그 정반대의 것을 동시에 욕망하는 것을 가리키는 심리학 용어인데, 탈식민주의 이론가들은 이것을 식민 상황의 일반적 특징으로 확장한다. 곧 식민자(colonizer)와 피식민자(colonized)의 정체성, 언어, 문화는 분열적이고 모순적이라는 것이다.

 

  ‘분열된 정형’은 이러한 식민지적 양가성의 대표적 사례이다. 원래 정형이란 그 이미지가 고정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식민 자가 문학 작품에서 피식민자를 묘사할 때 그 정형은, ‘충직한 거짓말쟁이’라는 말이 잘 보여 주듯이, 분열·모순되어 있으면서 양가적인 두 이미지 사이를 끊임없이 왕복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피식민자의 유동하는 정형, 즉 ‘재현된 타자성’은 그것을 거울로 하여 형성되는 식민자의 정체성마저 불안정하게 만든다.

 

  식민자가 피식민자를 본국에 맞게 교화하려 하거나 거꾸로 피식민자가 식민자에게 자발적으로 동화되려 할 때, 피식민자는 식 민자의 문화, 언어 등을 모방하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피식민자가 식민자를 모방하려 해도 그 모방은 완전히 똑같은 복제가 되지는 못한다. 그것은 피식민자의 완전한 동화를 두려워한 식민자가 본국의 문화와 언어 등을 불완전하게 전달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둘이 놓인 맥락(역사, 전통, 언어 등)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피식민자의 모방은 거의 같지만 똑같지는 않은 ‘흉내 내기’가 될 뿐이다. 모방 과정에서의 차이는 피식민자의 의도 때문에 발생하기도 한다. 피식민자는 식민자의 문화와 담론을 모방하면서도 그것을 비틀어 조롱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차이를 발생시키는데, 이를 ‘전유’라 한다.

 

  주목할 점은 신성하고 권위적이어야 할 식민자의 담론과 문화가 흉내 내기나 전유의 과정에서 피식민자에 의해 오염되고 훼손된다는 것이다. 탈식민주의 이론은 이런 이유로 흉내 내기나 전유가 모두 식민자에 대한 ‘저항’으로 기능한다고 말하며 저항의 외 연을 확장한다. 그 때문에 피식민자의 의식적인 동화 행위도 차이를 낳는 무의식적인 저항이 될 수 있다. 식민자의 문학을 흉내낸 ‘검은 셰익스피어’는 차이를 통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식민자에 저항했던 것이다.

 

  흉내 내기나 전유는 식민자와 피식민자의 문화, 담론, 인종, 언어 등을 섞이게 만드는데, 이러한 섞임을 ‘혼종’이라 한다. 혼종은피식민자에게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고, 식민자와 피식민자 사이의 상호 전염·변형을 통해 식민자에게도 나타난다. 혼종은 절대적이고 뛰어넘을 수 없는 차이와 위계를 상정하는 식민자에게 위협적이다. 식민자와 피식민자가 모두 그 정체성이 오염되고 유동적인 혼종이라면 자기 우월성의 근거도, 따라서 식민 지배의 근거도 뿌리째 흔들리기 때문이다.

 

  한국 근대 문학 연구는 이러한 양가성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친일과 반일이라는 민족주의적 이분법으로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식민 경험을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하면서도 식민 지배를 비판할 수 있게 되었다. 민족주의는 피식민자의 정체성이건 식민자의 정 체성이건 단일하고 고정된 것으로 상정하고 피식민자의 민족적 정체성을 강화하는 것이 식민 지배를 극복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강조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민족주의는, 친일과 반일의 어느 한쪽으로 재단할 수 없는 일상적인 식민 경험에 주목하지 않았다. 탈식민주의 문학 연구는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 식민 지배에 대한 다양한 문학적 저항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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