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EBS 수능완성 실전편 1회 26-31]
(가) 외국과의 무역 및 자본 이동이 자유로운 개방 경제에서는 고용, 성장과 같은 대내 거시 경제 변수뿐 아니라 경상 수지와 같은 대외 거시 경제 변수도 정부의 경제 정책에서 중요한 변수이다. 이때 경상 수지란 한 국가가 상품과 서비스를 수출하여 벌어들인 외화와, 외국의 상품과 서비스를 수입하기 위해 지급한 외화의 차이를 말하며, 지급한 외화보다 벌어들인 외화가 많은 경우를 경상 수지 흑자, 적은 경우를 경상 수지 적자라 부른다. 개방 경제에서의 대내 균형은 국민 소득을 완전 고용 국민 소득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에 해당하며, 대외 균형은 수출에서 수입을 뺀 순수출을 0으로 유지하는 것, 즉 경상 수지 균형을 달성하는 것에 해당한다.
정부의 거시 경제 정책 목표가 대내외 균형을 동시에 달성하는 것이라고 하자. 이때 정부 지출을 증가시키는 확장적 재정 정책은 국민 소득을 증가시키는 동시에 순수출을 감소시키는 효과를 유발한다. 확장적 재정 정책으로 인한 정부 지출의 증가로 국민 소득이 증가하고 물가가 상승하여 거래의 규모가 커지면, 교환의 매개 기능을 하는 화폐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다. 화폐 수요가 늘어나면 국내 이자율이 상승하고, 외국 자본이 유입되어 환율이 하락함으로써 국내 화폐 가치가 평가 절상되어 수출이 감소하고 수입이 증가한다. 그런데 기존의 경제 상태가 경기 불황에 경상 수지 적자가 결합된 경우라면 재정 정책만으로 대내외 균형을 동시에 실현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한다. 대내 균형과 대외 균형 중 어느 하나를 목표로 정책 수단을 사용하고 다른 하나의 불균형은 그 결과로서 받아들여야 하는 정책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대내외 균형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서는 순수출을 증가시킬 수 있는 정책 수단이 추가적으로 필요하다. 이와 같은 정책 수단으로는 환율 정책을 들 수 있다. 불황에 경상 수지 적자가 수반된 상황에서 확장적 재정 정책과 환율 인상 정책을 통해 국민 소득과 순수출을 모두 증가시킴으로써 대내외 균형을 모두 만족시키는 것이 가능해진다.
재정 정책과 환율 정책은 총수요에 영향을 미치는 방법이 서로 다르다는 점에서 독립적인 정책 수단이다. 재정 정책은 총수요의 크기에만 영향을 주는 지출 조정 정책이다. 반면에 환율 정책은 총수요의 구성에 영향을 미치는 지출 전환 정책이다. 예를 들어 환율이 인상될 경우 가계, 기업, 정부 등 국내 경제 주체들은 전체 지출 규모가 일정하더라도 상대적으로 값이 비싸진 수입재에 대한 지출을 줄이는 대신에 국내 생산 재화에 대한 지출을 늘리므로 총지출 규모의 변화 없이도 국내 생산 재화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게 된다. 지출 전환을 가져올 수 있는 정책으로는 환율 정책 이외에도 관세, 수출 보조금, 수입 할당 등이 있다.
(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성립된 브레턴우즈 체제는 금 환 본위제이면서 조정 가능한 고정 환율제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우선 금 1온스 1 당 35달러로 달러의 금 태환 2을 보장하고, 각국 통화의 가치를 달러화에 고정했다. 이를 통해 제1·2차 세계 대전 사이의 변동 환율제에서 벌어졌던 각국의 경쟁적 평가 절하와 이로 인한 국제 통화 질서의 불안정을 막으려 했던 것이다. 반면 일시적·구조적인 경상 수지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한 환율 조정이 허용되었다. 경상 수지 적자를 해소하기 위한 환율 인상을 허용함으로써, 환율을 유지한 채 경상 수지의 균형 회복을 위해 모든 부담을 각국의 국내 경제가 지게 되는 사태를 막으려 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전의 금 본위제 3 하에서는 고정 환율을 통한 국제 통화 질서의 안정이 최고의 목표였으므로, 경상 수지 불균형은 전적으로 국내 가격의 변동으로 해결했었다. 따라서 금 본위제하에서는 국제 통화 질서의 안정은 보장되었지만 국내 통화 정책의 자율성은 존재하지 않았다. 경상 수지 적자국의 경우 적자만큼 통화 또는 금이 유출되므로 국내 경제의 통화량이 줄어들고 그만큼 상품 및 노동의 가격이 떨어지게 된다. 따라서 값싼 임금과 원자재를 기반으로 경쟁력이 회복되며 그 결과 수출이 증가하고 수입이 줄어들어 경상 수지 균형을 회복하게 된다. 반대로 경상 수지 흑자국의 경우 그만큼 통화량이 증대되어 가격이 인상되고, 이는 곧 경쟁력의 저하로 귀결된다. 즉 수출이 줄고 수입이 늘게 되어 경상 수지 흑자가 사라지게 된다. 이처럼 경상 수지에 따라 국내 통화량과 국내 가격이 변동되기 때문에, 금 본위제의 고정 환율제에서는 국내 경제를 관리하기 위한 통화 정책의 자율성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이에 비해 브레턴우즈 체제는 국내 경제 정책의 자율성과 국제 통화 질서의 안정성을 연계시켰던 것이다.
브레턴우즈 체제의 또 다른 요소는 극히 비자유주의적인 국제 금융 질서이다. 브레턴우즈 협정에서 고안된 국제 금융 질서는 국가 간 자본의 흐름을 통제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개별 국가들에게 자본의 유출입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던 것이다. 국제 금융의 자유화를 억제시킨 근본적 동기는 연계된 자유주의를 구현하려는 데 있었다. 첫째, 자본의 자유로운 국제적 이동은 거시 경제 정책에 장애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조세, 인플레이션 등을 회피하기 위한 자본 유출이 일어날 경우 각국의 국내 경제 정책이 원만히 작동할 수 없으므로, 이를 막기 위한 강력한 자본 통제가 필요했던 것이다. 둘째,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하에서는 국제 통화 질서의 안정과 이를 기반으로 한 자유 무역 질서가 위협을 받는다. 대규모 자본의 빈번한 이동은 환율 체제의 변동을 가져오게 되고 각국의 경상 수지에 중대한 위협을 초래하여 결국 보호주의의 정치적 압력을 가중시킬 것이므로, 국가 간 자본 이동이 통제될 필요가 있었다. 요컨대 고정 환율제와 독자적인 통화 정책, 국가 간 자유로운 자본 이동은 동시 성립이 불가능하므로, 통화 정책의 자율성과 국제 통화 질서의 안정을 위해 자본의 국가 간 이동을 규제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브레턴우즈 체제에는 국내 경제와 국제 경제를 연계시킨 전후 국제 경제 질서의 성격이 그대로 구현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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