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정립-반정립-종합. 변증법의 논리적 구조를 일컫는 말이다. 변증법에 따라 철학적 논증을 수행한 인물로는 단연 헤겔이 거명된다. 변증법은 대등한 위상을 지니는 세 범주의 병렬이 아니라, 대립적인 두 범주가 조화로운 통일을 이루어 가는 수렴적 상향성을 구조적 특징으로 한다. 헤겔에게서 변증법은 논증의 방식임을 넘어, 논증 대상 자체의 존재 방식이기도 하다. 즉 세계의 근원적 질서인 '이념'의 내적 구조도, 이념이 시·공간적 현실로서 드러나는 방식도 변증법적이기에, 이념과 현실은 하나의 체계를 이루며, 이 두 차원의 원리를 밝히는 철학적 논증도 변증법적 체계성을 지녀야 한다.
헤곌은 미학도 철저히 변증법적으로 구성된 체계 안에서 다루고저 한다. 그에게서 미학의 대상인 예술은 종교, 철학과 마찬가지로 '절대정신'의 한 형태이다. 절대정신은 절대적 진리인 '이념'을 인식하는 인간 정신의 영역을 가리킨다. 예술·종교·철학은 절대적 진리를 동일한 내용으로 하며, 다만 인식 형식의 차이에 따라 구분된다. 절대정신의 세 형태에 각각 대응하는 형식은 직관·표상·사유이다. '직관'은 주어진 물질적 대상을 감각적으로 지각하는 지성이고, '표상'은 물질적 대상의 유무와 무관하게 내면에서 심상을 떠올리는 지성이며, '사유'는 대상을 개념을 통해 파악하는 순수한 논리적 지성이다. 이에 세 형태는 각각 '직관하는 절대정신', '표상하는 절대정신', '사유하는 절대정신'으로 규정된다. 헤겔에 따르면 직관의 외면성과 표상의 내면성은 사유에서 종합되고, 이에 맞춰 예술의 객관성과 종교의 주관성은 철학에서 종합된다.
형식 간의 차이로 인해 내용의 인식 수준에는 중대한 차이가 발생한다. 헤겔에게서 절대정신의 내용인 절대적 진리는 본질적으로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예술은 직관하고 종교는 표상하며 철학은 사유하기에, 이 세 형태 간에는 단계적 등급이 매겨진다. 즉 예술은 초보 단계의, 종교는 성장 단계의, 철학은 완숙 단계의 절대정신이다. 이에 따라 예술-종교-철학 순의 진행에서 명실상부한 절대정신은 최고의 지성에 의거하는 것, 즉 철학뿐이며, 예술이 절대정신으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은 인류의 보편적 지성이 미발달된 머나먼 과거로 한정된다.
(나) 변증법의 매력은 '종합'에 있다. 종합의 범주는 두 대립적 범주 중 하나의 일방적 승리로 끝나도 안 되고, 두 범주의 고유한 본질적 규정이 소멸되는 중화 상태로 나타나도 안 된다. 종합은 양자의 본질적 규정이 유기적 조화를 이루어 질적으로 고양된 최상의 범주가 생성됨으로써 성립하는 것이다.
헤겔이 강조한 변증법의 탁월성도 바로 이것이다. 그러기에 변증법의 원칙에 최적화된 엄밀하고도 정합적인 학문 체계를 조탁하는 것이 바로 그의 철학적 기획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그가 내놓은 성과물들은 과연 그 기획을 어떤 흠결도 없이 완수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을까? 미학에 관한 한 '그렇다'는 답변은 쉽지 않을 것이다. 지성의 형식을 직관-표상-사유 순으로 구성하고 이에 맞춰 절대정신을 예술-종교-철학 순으로 편성한 전략은 외관상으로는 변증법 모델에 따른 전형적 구성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질적 내용을 보면 직관으로부터 사유에 이르는 과정에서는 외면성이 점차 지워지고 내면성이 점증적으로 강화·완성되고 있음이, 예술로부터 철학에 이르는 과정에서는 객관성이 점차 지워지고 주관성이 점증적으로 강화·완성되고 있음이 확연히 드러날 뿐, 진정한 변증법적 종합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직관의 외면성 및 예술의 객관성의 본질은 무엇보다도 감각적 지각성인데, 이러한 핵심 요소가 그가 말하는 종합의 단계에서는 완전히 소거되고 만다.
변증법에 충실하려면 헤겔은 철학에서 성취된 완전한 주관성이 재객관화되는 단계의 절대정신을 추가했어야 할 것이다. 예술은 '철학 이후'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유력한 후보이다. 실제로 많은 예술작품은 '사유'를 매개로 해서만 설명되지 않는가. 게다가 이는 누구보다도 풍부한 예술적 체험을 한 헤겔 스스로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이 때문에 방법과 철학 체계 간의 이러한 불일치는 더욱 아쉬움을 준다.
헤겔의 변증법은 사실 철학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 쯤은 쉽게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한 주제입니다. 정반합이라던지, 테제와 안티테제의 대립이라는 측면이 대립구도를 이룬다는 특징 덕분에 각종 분야에서 널리 가져다 적용하고는 합니다.
변증법이라는 주제나 개념 자체는 역대 수능에서 다루었던 주제들의 난이도와 비교했을때 독보적으로 어려운 것은 전혀 아닙니다. 워낙 유명한 주제라 언젠가는 나올 거라고 예상하는 것도 가능하며, 헤겔의 철학은 칸트나 마르크스 등 유명한 사람들과 공통 분모를 가지기도 하거든요. 헌데 수능에 나온 위 지문을 읽어보면, 변증법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글의 형식 자체가 굉장히 난해합니다. 독자 배려 없이 어려운 용어를 마구 던지고, (나) 글쓴이의 주장도 명확히 핵심 문장 하나로 요약한다기 보다 의문 형식까지 동원해서 주절 주절 설명하는 느낌입니다. 그러니 글을 읽다 보면 철학에 관한 어느 정도의 배경 지식, 텍스트를 접했던 경험성 등이 필요할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어 기존의 수능 지문들과의 차이점이 있음을 부정하긴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 지식들은 평범한 고등학교 3학년이 알고 있어야 한다고 보기는 지나칩니다.
우선 그렇다 할지라도 그나마 EBS 연계 공부를 하고 들어갔다면 정답을 내는 것까지는 도전해 볼만한 가치가 있으니, 겁먹고 포기하는 일은 없도록 합시다. (그래도 8번은 과합니다...)
내용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변증법은 글에도 나와 있듯이 어떤 범주나 개념이 등장하고, 그에 반(反)하는 범주나 개념이 등장한뒤, 갈등과 합의를 거쳐 유기적으로 조화로운 통일이 이루어져 합해진다는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그냥 두 대상이나 개념, 사상 따위가 대립하다가 통일된 나름의 해답을 내뱉는 구조를 말하는 겁니다. 여기서 헤겔은 정반합에 해당하는 것이 예술·종교·철학이라 말한 것이고요.
그러나 (나)의 글쓴이는 헤겔의 이러한 주장에 모순이 있다고 지적하는 것입니다. 헤겔의 변증법 구조에 따르면 정(테제)에 해당하는 예술은 초보 단계니까 철학이라는 완숙 단계에 가서는 뚜렷한 모습은 녹아 없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예술 자체가 절대정신으로 기능하는 시기는 머나먼 과거였어야 하는데, 실제로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현대, 그리고 지금까지도 미학의 대상인 예술은 결코 철학보다 낮은 단계가 아닌, 오히려 철학의 한 분파라고 할 수도 있고 고로 철학과 구분하기 애매한 동등한 위상을 가지는 것으로 관찰되기 때문입니다. 글쓴이는 심지어 예술을 철학 이후의 자리를 꿰찰 수 있는 후보로 꼽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는 헤겔의 변증법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고 이것이 8번 문제의 핵심입니다. 8번 문제의 답은 단계의 비적합성을 꾸짖는 내용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정확한 정답 내용은 싣지 않겠습니다.)
반면,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이나 <자본론>을 보면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말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물질과 정신의 대립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헤겔은 변증법으로 절대정신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절대정신은 말그대로 정신입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반대로 변증법은 인정했지만, 정신이 아니라 물질이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가는 것이며 물질이 있어야 정신도 존재한다는 유물론(唯物論)을 펼칩니다. 참고로 유물론의 '유'는 '오직 유'입니다. 오로지 물질만 있다는 뜻인데, 실제로 유물론이라고 하면 정신이 없다는 극단적인 주장이라고 보기만은 어렵고 정신보다 물질을 우선시하는 입장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곧 물질 변화에 따라 자본주의가 지고 사회주의 단계가 이행하는 것이라 본 것으로, 과학적 사회주의라고도 합니다. 흔히 우리가 들어봤을 법한 사회주의-프롤레타리아 독재-공산주의 모델이며 고대 노예제-중세 봉건제 등의 순서대로 이행한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예상입니다. 물론 이 예상은 자본주의의 승리 때문에 빗나갔지만 말이죠.
수능 비문학의 난이도가 훌쩍 뛴 만큼, 기출문제와 EBS 연계 교재의 지식화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의 지식화는 단순히 암기하겠다는 마인드로 접근하겠다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복습하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레 머리 속에 저장되는 것을 뜻하며, 또한 글을 읽으며 이해에 집중하게 되면서 이해하고 내 것이 되면 체득은 저절로 뒤따라옵니다. 평상시의 독서를 통해서도 지식의 폭을 넓히고, 관련된 제제에 추가적인 정보를 획득하는 과정이 전보다 강조되어야 함을 뜻합니다. 예컨대 헤겔 지문을 보면 헤겔이 또다시 직접적으로 출제되긴 어렵지만, 변증법이라는 키워드는 상술한 것처럼 마르크스 등과 또 엮일 수 있다는 것까지 멀리 나아가 공부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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