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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읽는 과학과 사회

등자(Stirrups)가 주는 잠재력에 관한 교훈

by Gosamy 2023.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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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시드 마이어의 문명6의 과학기술 중 등자. 등자를 개발하면 기사(Knight)를 생산할 수 있다. 승마의 기본적 도구는 안장이 아닐까? 왜 하필 등자일까?

 

  '등자(鐙子, Stirrups)'란 말을 타는 사람인 기수가 안장에 앉고 양쪽 두 발을 걸어 승마시 좌우 방향의 균형을 잡게 하고, 승마 과정에서 발을 디딛을 때 사용하는 도구이다. 우리에게 더 익숙한 말 안장은 말 등에 설치하여 기수가 앞뒤 방향으로 균형을 잡아 안정적으로 승마를 돕는 도구이다. 안장이 없다면 즉시 기수는 달리는 말에서 관성과 흔들림으로 인해 앞뒤 방향 균형을 잡지 못하고 떨어져 큰 부상을 입기 쉬웠기에 안장은 말의 조련과 더불어 거의 동시에 사용된 반면, 등자는 그렇지 않다. 그런데 미국의 역사학자 린 화이트 주니어에 의하면 등자는 단순히 승마의 안전과 효율을 확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 기술 자체로 아주 큰 사회의 변화와 역사의 변수가 싹텄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5세기 무렵 아틸라가 이끄는 훈족이 유럽을 침공함에 따라, 게르만족은 민족 대이동을 하여 로마 제국을 침공하게 된다. 이로인해 약 20년 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다(476). 이때 메로베우스 왕조는 프랑크 왕국을 세우는데, 투르 푸아티에 전투로 유명한 카롤루스 마르텔의 아들인 궁재 피핀 3세는 메로베우스 왕조를 무너뜨리며 카롤루스 왕조가 시작된다. 그의 아들 샤를마뉴는 서유럽에서 특히 프랑스와 독일의 근본 뿌리를 여는 인물로 여겨지며 서유럽 문화를 정비하고 옛 서로마 영토를 회복했으며, 교황의 대관까지 받아 카롤루스 대제로 불리는 현재까지도 추앙받는 인물이다.

 

 

 
[그림 2] 날카로운 창은 본래 단순 원뿔 모양이었지만 추후에 수평 방향으로 받침대가 발생한다. 이는 창이 적의 몸을 찌를 때 너무 깊숙히 찔러 다시 창을 빼내기 어려워지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샤를마뉴는 정치 체제로 봉건제(Feudalism)를, 경제 체제로 장원제를 시행했다. 봉건제란 주군은 봉신에게 토지를 하사하고 봉신은 주군에게 충성을 바치는 쌍무적 계약 관계로 다층적 구조를 갖는다. 봉신의 직업은 기사였다. 기사는 평상시에 말을 훈련시키고 토지를 관리하다가 전쟁이 발발하면 말을 타고 기마충격전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주군에게 충성을 다하였다. 기마충격전이란 질주하는 말 위에서 창을 옆구리에 낀 뒤 적에게 돌진하여 창이 가진 운동량을 통해 적의 몸을 찔러 제압하는 전투법을 말한다. 기마충격전이 탄생하기 전후로 창의 모양이 약간씩 다른데, [그림 2]와 같이 창의 아래쪽에 받침대가 달리게 된다. 이는 뾰족한 창이 적의 몸을 너무 깊숙히 관통하여 창을 도로 빼내기 어려워지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기마충격전을 하면 기수와 말의 매우 큰 운동량 덕분에 창이 적의 두꺼운 갑옷을 뚫을 수는 있었지만, 그 후에 기수가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갑옷을 뚫고 다시 창을 빼내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런데 이때 등자가 없으면 기마충격전을 실행할 수 없다. 기수는 운동량을 이용하여 창을 옆구리에 낀 채로 돌진하는 것이지 창을 직접 들고 손으로 찌르는 것이 아니므로, 빠르게 달리는 말이 급격히 감속하더라도 안전하게 말 위에서 고정되어야 있어야 한다. 등자가 없다면 기수는 창으로 적을 찌름과 동시에 감속하는 말의 속도에 의한 관성을 버티지 못하고 말 앞으로 날라가 넘어지고 만다. 그러면 말에서 떨어짐에 따른 부상이 발생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다시 말을 타기 전까지의 안전을 보장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린 화이트에 따르면 카롤루스 마르텔과 카롤루스 대제가 봉건제를 시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기사이고, 기사의 전투법은 기마충격전이며, 그를 가능하게 해 준 것은 등자의 발견 덕분이었다고 주장한다. 그 전까지 그들의 부대는 기병이 아닌 보병이었고, 당시 보병은 기병에 대해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마련이었다. 사소해 보이는 등자의 발견으로 그들은 국가의 정치 체제인 주종제(봉건제)를 안정적으로 유지시켰고 그것은 나라를, 나아가 유럽의 역사 전체를 바꾸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등자를 발명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들은 등자의 잠재력을 발견하여 현실에 그 유용성을 적용하고 효과를 보았던 것이다.

 
[그림 3] 한번 쯤 봤을 법한 고구려 무용총 벽화. 왼쪽 아래 기수는 분명 등자를 사용하고 있다. 이 벽화는 5세기 무렵에 만들어졌다. 카롤루스 마르텔은 7세기 사람이다.

 

  사실 등자는 이미 기원전 4세기 경에 중국 진나라에서 사용되고 있었다. 어떤 문헌에 따르면 등자가 기원전 2세기 경에 이미 인도에서도 사용되고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5세기 무렵 그려진 고구려의 벽화에서 기수가 등자에 발을 얹고 화살을 쏘는 장면이 나타난다. 사료에 의하면 등자는 인도와 중국을 거쳐 중앙아시아를 넘어 유럽으로 전파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유럽에 등자는 카롤루스 마르텔에게만 도달한 것이 아니며, 그에게 가장 먼저 도달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남들보다 빨리 그것의 유용성에 눈을 뜬 그는 전쟁이 난무하던 시대에 기마충격전이 가능한 강력한 전투법을 만들었고 그를 바탕으로 더 많은 기사들을 휘하에 두어, 나라를 지배했다. 나라를 지배하여 사회 제도를 가꾸고 문화를 다듬어갔다. 기사는 차츰 사회의 상류 계층이 되어 강력한 높은 신분의 표징이 되었고, 봉건제가 무너지기 전까지 유럽 사회 그 자체의 상징이었다. 군대의 주류에서 기사가 벗어난 것은 르네상스 시대가 끝나고 18세기까지 도달하여 강선(Rifling)과 화약(Gunpowder)의 사용과 발전이 극단적으로 상용화 되었을 때이다. 봉건제와 기사는 거의 천 년에 가까운 유럽 역사를 이끌어왔다.

 

[그림 3] 켄타우로스.
 
 

 린 화이트는 말한다. 어떤 기술이나 대상이 발명(Invention)되었지만 잠재된 형태로 조용히 숨을 쉬고 있다가 모종의 이유로 인해 누군가에 의해 깨어난다면, 그로 인한 거대한 사회/문화적 파급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이다. 발명품이 사회에 녹아들어 구조적 변화 또는 혁명을 이끌어 낼 수 있는지의 여부는 발명품의 특징 또한 배제할 수 없으나 그것의 진가를 알아보고 잠재력을 실현으로 연결하는 사회의 분위기, 이데올로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도자의 총명한 판단력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등자 논문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등자만큼 간단한 발명품은 많지 않지만, 또 등자만큼 역사에 촉매 같은 영향을 준 발명품도 많지 않다(Few inventions have been so simple as the stirrup, but few have had so catalytic an influence on history - Lynn White Junior). ...(중략)... 중세의 귀족들은 기마충격전의 형태, 그리고 그 사회에 맞는 문화와 사고방식을 키웠다. 과거 약 1천년 동안 말 위에 올라선 기사는 등자 덕분에 가능했다. 등자는 사람과 군마의 결합을 바탕으로 전투 방식을 창조했다. 고대인들은 반인반마(馬)인 켄타우로스를 상상했다. 중세 초에 그런 자가 유럽의 지배자가 되었다." 우리 나라에는 제주도에 가면 여럿 승마 체험장이 있다. 당신이 발바닥을 디딛는 그 조그마한 장치는 유럽의 1천년 역사를 주무르고 지배하던 기사들이 매일 같이 인사를 건네던 것이었다. 

 

[그림 4] 등잔과 등자는 같은 한자 '등'을 쓴다.

 

  마무리 해보자. 이글의 제목에 '교훈'을 적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등자의 '등'은 '등잔 등(鐙)'이다. 당신은 당신의 잠재력(Potential)에 대해서 알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잠재력을 모르거나, 없다고 생각하는가? 등잔 밑이 어둡다 : 진가를 알아보고 그것을 실현으로 이끌어주는 촉매제는 당신 자체가 아니다. 당신이 속해 있는 사회 구성원으로 포함된 집단과 그 집단의 지적 능력을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총명함은 잠재력에서 실현되고, 다시 그 총명함은 잠재력을 숨쉬도록 이끌어낸다. 그래서 내가 생각한 교훈은 다음과 같다 : 촉매재를 찾아라(Find the Cataly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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