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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읽는 과학과 사회

제 3의 아편전쟁

by Gosamy 2023.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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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현대 전쟁은 총과 칼로만 전개되는 것이 아니다. 현대 전쟁은 거의 모든 방면에서 상대방을 굴복시키기 위한 수단이 총동원되고 있다. 제아무리 초강대국 미국이라지만, 완벽한 인간이 없듯이 완벽한 국가도 없다. 마약 문제나 빈부 격차 등 난잡한 사회 문제는 우리가 어처구니 없이 깔보는 사회주의 국가 중국 앞에서 단 하나의 가드도 올리지 못하고 속절없이 무너지는 빈틈을 보여주고 있다.

 

  마약(痲藥)이란 인체에 각성, 진통, 마취 등의 효과를 발생시키면서 동시에 장기적으로 금단 현상을 발생시켜 정신적·육체적 폐해를 유발하는 일련의 물질을 가리키는 것이다. 마약은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고, 역사적으로 거대하고 굵직한 사건들을 발생시키는 요인으로 자리잡아 왔으며 최근엔 G2에 속하는 강대국인 미국과 중국의 경제 분쟁 속에서도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데, 현재 미국의 18~49세의 젊은 연령층의 사망 원인 1위가 강력한 마약 펜타닐 중독으로 인한 것이 되었을 만큼 사회에 강력한 파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일반적으로 마약은 크게 효과를 발생시키는 물질을 자연의 식물로부터 추출하거나 화학적으로 합성하는 방식으로 얻을 수 있다. 예컨대 코카인은 코카나무 잎에서 추출하고, 아편, 모르핀, 헤로인은 양귀비의 추출물을 근원으로 한다. 반면 메스암페타민(필로폰), 펜타닐과 같이 실험실에서 화학적 합성을 통해 마약성 물질을 제조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림 2] 양귀비 씨방에 상처를 내었을 때 떨어지는 즙.

 

  마약류 중 인류가 가장 오랫동안 사용해 온 것은 모르핀(Morphine)이다. 당 현종의 그녀 이름이 붙은 식물 양귀비(Poppy)의 속(屬) 중 특이 종에 한하여, 양귀비가 피운 꽃이 만개하고 떨어지면 며칠 뒤 조그마한 달걀 크기의 씨방이 드러난다. 이 씨방이 여물기 전 상처를 내면 밝고 하얀 즙이 떨어지는데, 이를 모은 뒤 건조시킨 것이 아편(Apium)이다. 아편은 진통과 진해라는 육체적 치료 효과와 더불어 비애와 우울감을 완화시키는 효과를 가지고 있어 의약품으로도 사용할 만한 가치가 존재하지만, 모든 마약이 그렇든 용량을 초과하여 복용하면 탐닉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아편의 효과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이 약을 섞은 술을 마신 자는 눈앞에서 가족이 죽어도 한나절은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라는 두려운 문장으로도 기록되어 있다.

 

  1803년 젊은 약제사 프리드리히 빌헬름 제르튀르는 아편에 화학적 합성을 가해 마약성 효과의 원인 물질 추출에 성공하는데, 이것이 바로 그리스 신화의 신 모르페우스에서 이름을 따온 모르핀이다. 모르핀은 아편과 비슷하게 육체적·정신적 고통 완화의 효과가 존재한다. 그런데 모르핀의 중독성과 위험성은 아편의 어깨를 지긋이 눌러 재낀다. 그 까닭에 대해 연구한 결과 과학자들은 인간의 뇌에 모르핀과 결합하는 수용체가 따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내었다. 마치 모르핀이 와서 결합해주기를 기다리는 수용체가 인간의 뇌에 존재한다는 것인데, 이윽고 원래 그 수용체는 모르핀이 아닌 인체에서 자연스럽게 합성되는 호르몬의 자리였음이 밝혀진다. 이 호르몬은 인간이 죽음의 문턱에 도달하기 직전 강력하게 분비되어 어마무시한 진통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으로, 약학에서 '체내의'를 의미하는 접두사 'endo'를 모르핀에 붙여 '엔도르핀(Endorphine)'이라 명명된 물질에 해당한다. 엔도르핀은 단순히 기쁘거나 행복한 상태에서 분출되는 호르몬이 아니라 목숨이 위태로운 급격한 고통, 쇼크 등을 동반한 상황에서 분출되는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초월적인 마약성 물질이기에 평상시에 건강을 해칠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만일 인체에 모르핀을 투여하면 엔도르핀 수용체에 모르핀이 엔도르핀 대신 결합하게 되고, 인체는 엔도르핀 생산을 감소시키게 되는데 이후 엔도르핀이 필요할 때 분비량이 적어지기 때문에 우리의 뇌는 엔도르핀에 대한 욕망을 갈구하게 된다. 이것이 모르핀의 금단작용이 되고 다시 모르핀을 투여하면 엔도르핀 생산량은 더욱 줄어들어 인체는 무한으로 돌고 도는 죽음의 고리를 끊을 수 없는 중독 현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된다.

 

[그림 3] 마약류의 의존도와 독성을 나타낸 표. 어떻게 보면 담배와 알코올, 커피도 독성이 약한 마약류이다. 생각해보자. 금연이 어려운 까닭은 담배를 앞으로 '단 한 개비도 피지 말아야 한다' 이기 때문이다. 니코틴보다 의존도가 낮은 알코올과 카페인 역시 마찬가지다. 절주는 쉽지만 '단 한 잔도 마시지 말아야 한다'는 굉장히 어렵다. 커피 역시 마찬가지다. '단 한잔도 마시면 안된다'는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우리는 위의 기호품을 이미 접해본 이상, 이들은 그래도 진짜 마약 수준은 아니기 때문에 중독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의존도를 '조절'하여 줄 알아야 한다. (그래도 금연은 하는게 좋다) 그런데 진짜 '마약'이라 불리는 것들은 과학적으로, 즉 생리학적으로 조종간을 박살내 버린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의지 따위와 무관하게 생명을 벼랑 끝까지 몰고 가는 것이다.

 

  화학자들은 약효적 측면에서 모르핀의 우수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중독성을 줄이고 진통 작용을 극대화 할 수 있는 물질을 모르핀으로부터 다시 한번 합성해 내기에 이른다. 모르핀에 아세틸기를 결합하게 되면 분자가 지용성을 띠게 되어, 체내 흡수율이 올라가게 되는데, 이러한 방식으로 탄생한 모르핀을 능가하는 중독성을 자랑하는 주인공은 마약계의 영웅(Hero)이라 불리는 '헤로인(Heroin)'에 해당한다. 헤로인은 사실상 자연 식물을 기반으로 한 물질로 구성된 마약류 중 최고의 치명성, 독성, 의존성을 가진 물질로 여겨진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양귀비 기원의 세 마약 중 아편의 효과는 현대 마약에 비해 각성 정도가 떨어지고, 제약 및 화학 기술이 급격히 발전된 현대 사회에서는 화학적 반응으로 마약류 물질을 대량 합성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모르핀과 헤로인, 그리고 코카인은 주 재료가 자연의 추출물이기에 상대적으로 화학적 합성 마약에 비해 비용이 비싸고 생산 소요 시간이 길다. 불법 마약 제조업자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제적 측면에서 검은 돈을 끌어모으기 위해 악랄한 방법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공포와 절망의 문을 열어 나락의 늪으로 셀 수 없는 영혼을 끌어 당긴, 그리고 앞으로도 이 재앙을 운전하게 될 펜타닐의 탄생 경로이다.

 

 
[그림 4] 펜타닐은 간단히 화학실에서 합성이 가능하기 때문에 교육받지 못한 빈곤층과 사회 취약층, 청소년들 사이로 손쉽게 은둔하는 것이 가능하다. 위 그림과 같이 외형으로는 절대 구별이 불가능할 정도로 의약품을 닮았으며, 시중에서 구매 가능한 인지도가 높은 사탕 및 젤리의 모습을 띠고 있는 경우도 많아 단속조차 버거운 것이 현실이다.

 

  펜타닐은 화학적 마약으로 아주 값싼 재료를 통해 대량 생산하는 것이 가능하다. 게다가 펜타닐을 합성하는데 사용되는 화약 약품은 아세톤이나 염소 등 여러 의료용, 연구용으로 사용되는 우리에게 친숙한 물질들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원료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현재 미국 내 유통되는 펜타닐은 중국이 원료를 멕시코에 수출하고,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이 이를 대량 불법 생산하는 경로를 거쳐 미국 본토로 암암리에 전달되고 있다. 나아가 인터넷 기술과 가상화폐의 탄생으로 자금을 세탁하는 방식이 더욱 간편해졌다는 사실은 마약 생산에 불을 지피고 있다. 이렇게 탄생한 펜타닐은 치사량이 겨우 1-2mg 에 달하면서도 헤로인의 100배에 준하는 위력을 보유하고 있다. 값싸면서 대량으로 보급되는 펜타닐은 미국 대륙 곳곳에서 심각한 질병을 발생시키고, 특히 사회적 취약 계층에게 손쉽게 다가가 환자들을 헤어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로 인도하고 있다. 펜타닐은 대한민국에서도 의료용으로 사용되고 있으나 의사의 몰상식한 처방전 남용으로 특히 젊은 계층의 호기심의 빈틈을 자비없이 강타하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도 모 장관은 대한민국이 더 이상 마약 청정국에 해당하지 않으며, 마약과의 전쟁을 선전포고한 바가 있다.

 

  중국은 미국의 경제 보복에 대해 비윤리적인 무기를 꺼내들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약 200년전 열강에게 당한 역사의 수모를 이제 미국을 향하여 재현하기 위해 날카로운 칼을 뽑아들었다. 역사상 지구 최대의 강대국은 중국의 멕시코로의 원료 수출에 강한 비판과 불쾌감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은 미국의 사회 시스템이 마약 문제에 대한 강력한 관리 부족을 내세우면서 발만 동동 구르는 워싱턴에 지조섞인 코웃음만 날리고 있다. 트럼프 정부가 세운 멕시코 장벽 사업은 이민자를 막기 위해 시작되었으나 이제 판도가 달라졌다. 멕시코에서 출발한 하얗게 빛나는 가루는 장벽을 가뿐이 넘어 흩날리다가 미국의 어두운 사회 사이에 기생하여 그들을 좀먹기 시작한다.

 

[그림 5] 아편전쟁. 기술의 힘으로 골리앗을 도륙낸 다윗, 대영제국. 청의 가슴 아픈 역사이다. 동시에 그 청은 우리에게는 병자호란의 전범국이다. 이제는 갑과 을이 바뀌었다. 사실, 지긋히 당연한 명제를 우리는 망각하고 있다 : 역사는 반복되고 수많은 제국은 그렇게 뒤안길로 사라져 갔다.

 

  국제 평화와 국제법 및 조약이 역사상 가장 발달한 21C에서도 발생하는 이러한 현대 전쟁의 최전선에선 선과 악의 냉철한 구분이 난해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과거의 수모에 대한 보복을 위시하여 마약의 원료를 제공하는 중국이 원인을 제공하였으니 악인가? 아니면 미국의 최대 도시 뉴욕에서조차 한 블럭마다 발견되는 정신이상자를 도로에 방치하고 버젓이 마약 중독자들로 점철된 좀비 도시의 악명을 미온적 태도로 방관하는 미국의 사회 시스템의 폐해가 악인 것인가? 아니면 먹고 살기 위해 마약 거래뿐이 해결책이기에 수많은 애꿎은 사람을 죽인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부가 오히려 카르텔을 독려하는 멕시코가 악인 것인가? 한 쪽에서는 인과론을 펼쳐놓고 원인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손을 잡은 두 쪽에서는 전통적인 수요와 공급 법칙으로 윤리학을 투기한 채 단단히 맞서고 있다. 사실 모든 것이 전부 문제다 : 예(禮)의 치(治)를 드높여 주창한 제자백가 사상가 순자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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