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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LEET 독서/논리학, 과학철학

양자역학과 LP [2018학년도 9월/논리학]

by Gosamy 2021.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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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부분 월식 때 붉게 물든 달. 양자역학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회의적인 주장은, 인식론과 존재론의 철학적 문제로 자연스레 연결된다. 르네 데카르트는 방법적 회의를 통해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말함으로써 인식을 통한 존재를 긍정하였다. 이와 대립되는 철학자로 <존재와 시간>의 저자 마르틴 하이데거를 뽑을 수 있는데, 그는 데카르트와 달리 존재하기에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을 내세운다. 양자역학의 공존과 관찰을 통한 결정이라는 해석 또한 이와 유사하지 않은가?

 

  고전 역학에 따르면, 물체의 크기에 관계없이 초기 운동 상태를 정확히 알 수 있다면 일정한 시간 후의 물체의 상태는 정확히 측정될 수 있으며, 배타적인 두 개의 상태가 공존할 수 없다. 하지만 20세기에 등장한 양자 역학에 의해 미시 세계에서는 상호 배타적인 상태들이 공존할 수 있음이 알려졌다.

 

  미시 세계에서의 상호 배타적인 상태의 공존을 이해하기 위해거시 세계에서 회전하고 있는 반지름 5cm의 팽이를 생각해 보자그 팽이는 시계 방향 또는 반시계 방향 중 한쪽으로 회전하고 있을 것이다팽이의 회전 방향은 관찰하기 이전에 이미 정해져 있으며다만 관찰을 통해 알게 되는 것뿐이다이와 달리 미시 세계에서 전자만큼 작은 팽이 하나가 회전하고 있다고 상상해보자이 팽이의 회전 방향은 시계 방향과 반시계 방향의 두 상태가 공존하고 있다하나의 팽이에 공존하고 있는 두 상태는 관찰을 통해서 한 가지 회전 방향으로 결정된다두 개의 방향 중 어떤 쪽이 결정될지는 관찰하기 이전에는 알 수 없다거시 세계와 달리 양자 역학이 지배하는 미시 세계에서는우리가 관찰하기 이전에는 상호 배타적인 상태가 공존하는 것이다배타적인 상태의 공존과 관찰 자체가 물체의 상태를 결정한다는 개념을 받아들이기 힘들었기 때문에아인슈타인은 당신이 달을 보기 전에는 달이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라는 말로 양자 역학의 해석에 회의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최근에는 상호 배타적인 상태의 공존을 적용함으로써 초고속 연산을 수행하는 양자 컴퓨터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이는 양자 역학에서 말하는 상호 배타적인 상태의 공존이 현실에서 실제로 구현될 수 있음을 잘 보여 주는 예라 할 수 있다미시 세계에 대한 이러한 연구 성과는 거시 세계에 대해 우리가 자연스럽게 지니게 된 상식적인 생각들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이와 비슷한 의문은 논리학에서도 볼 수 있다.

 

  고전 논리는 과 거짓이라는 두 개의 진리치만 있는 이치 논리이다그리고 고전 논리에서는 어떠한 진술이든 ’ 또는 거짓이다이는 우리의 상식적인 생각과 잘 들어맞는다그러나 프리스트에 따르면, ‘인 진술과 거짓인 진술 이외에 참인 동시에 거짓인 진술이 있다이를 설명하기 위해 그는 거짓말쟁이 문장을 제시한다거짓말쟁이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 자기 지시적 문장과 자기 지시적이지 않은 문장을 구분해 보자.

 

  자기 지시적 문장은 말 그대로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문장을 말한다예를 들어 이 문장은 모두 열여덟 음절로 이루어져 있다.”라는 인 문장은 자기 자신을 가리키며 그것이 몇 음절로 이루어져 있는지 말하고 있다반면 페루의 수도는 리마이다.”라는 인 문장은 페루의 수도가 어디인지 말할 뿐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문장은 아니다.

 

  “이 문장은 거짓이다.”는 거짓말쟁이 문장이다이는 이 문장’ 이라는 표현이 문장 자체를 가리키며 그것이 거짓이라고 말하는 자기 지시적 문장이다그렇다면 프리스트는 왜 거짓말쟁이 문장에 참인 동시에 거짓을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할까이에 답하기 위해 우선 거짓말쟁이 문장이 이라고 가정해 보자그렇다면 거짓말쟁이 문장은 거짓이다왜냐하면 거짓말쟁이 문장은 자기 자신을 가리키며 그것이 거짓이라고 말하는 문장이기 때문이다반면 거짓말쟁이 문장이 거짓이라고 가정해 보자그렇다면 거짓말쟁이 문장은 이다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그 문장이 말하는 바이기 때문이다프리스트에 따르면 어떤 경우에도 거짓말쟁이 문장은 참인 동시에 거짓인 문장이다따라서 그는 거짓말쟁이 문장에 참인 동시에 거짓을 부여해야 한다고 본다그는 거짓말쟁이 문장 이외에 참인 동시에 거짓인 진리치가 존재함을 뒷받침하는 다양한 사례를 제시한다특히 그는 양자 역학에서 상호 배타적인 상태의 공존은 이 점을 시사하고 있다고 본다.

 

  고전 논리에서는 참인 동시에 거짓인 진리치를 지닌 문장을 다룰 수 없기 때문에 프리스트는 그것도 다룰 수 있는 비고전 논리 중 하나인 LP[각주:1]를 제시하였다그런데 LP에서는 직관적으로 호소력 있는 몇몇 추론 규칙이 성립하지 않는다전건 긍정 규칙을 예로 들어 생각해 보자고전 논리에서는 전건 긍정 규칙이 성립한다이는 “P이면 Q이다.”라는 조건문과 그것의 전건인 P가 이라면 그것의 후건인 Q도 반드시 이 된다는 것이다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LP에서 전건 긍정 규칙이 성립하려면조건문과 그것의 전건인 P가 모두 ’ 또는 참인 동시에 거짓이라면 그것의 후건인 Q도 반드시 ’ 또는 참인 동시에 거짓이어야 한다그러나 LP에서 조건문의 전건은 참인 동시에 거짓이고 후건은 거짓인 경우조건문과 전건은 모두 참인 동시에 거짓이지만 후건은 거짓이 된다비록 전건 긍정 규칙이 성립하지는 않지만, LP는 고전 논리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들에 답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로서 의의가 있다.

 

 

 

  1. '역설의 논리(Logic of Paradox)'의 약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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