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적공간은 대부분의 선형대수학 책의 마지막에 위치해 있습니다. 보통 마지막에 위치하면 학습률이 떨어지기 마련이죠. 그런데 물리학을 공부하며 필요한 선형대수학의 절반은 내적공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고전역학에서 대각화나 고유치 문제를 단독적으로 쓰거나 가벼운 행렬 연산을 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수리물리학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양자역학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양자역학은 선형대수학과 미적분학, 특수함수의 삼위일체고 하나라도 빼놓고는 제대로 소화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양자역학에서의 벡터공간은 대부분 내적공간(중 특이한 성질을 가진 것)입니다.
사실 공부를 조금 더 깊게 해주면 공간의 종류는 굉장히 많습니다. 그리고 많은 공간들은 내적을 이해하고 나서야 정의가 가능합니다. 그래서 내적공간을 공부할 때는 선행지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그렇지만 선형대수학을 따로 공부하지 않고 그냥 급급하게 들어오신 분들도 많을테니 천천히 가겠습니다. 1
내적공간을 시작할 때 가져야 할 마음가짐의 당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선 내적의 가장 큰 역할은 추상적인 벡터공간에서 정의되었던 벡터들의 각, 거리, 그리고 도형의 방정식을 건설하는데 중심이 된다는 것입니다. 고등학교 때도 그랬었죠. 다만, 정의부터 예전에 고등학교때 배운 내적과는 상당히 다른 특징들이 등장한다는 것, 실수와 복소수의 차이를 열심히 살필 것 또한 유념해 두시기 바랍니다.
1. 내적공간
1) 내적의 정의
내적의 정의는 다음의 성질을 만족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벡터공간을 정의했을 때처럼, 다음의 성질을 만족시키면 내적공간이라 불러줍니다. 더불어, 문자에 굳이 볼드체 표기가 되지 않더라도 벡터공간 $V$의 원소라는 말이 있으면 벡터로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2
정의($L.A$) 6-1) 내적의 정의
$F$-벡터공간 $V$에서 정의된 내적(Inner product)은 $\left\langle x,y \right\rangle$ 로 표기하며 $V$의 임의의 벡터 $x$와 $y$의 순서쌍을 $F$에 관한 스칼라에 대응시키는 사상
$$\left\langle \;\;,\;\; \right\rangle\;:\;V\times V\rightarrow F$$ 을 가리키며, 다음 네 조건을 만족한다. 임의의 $x,y,z\in V$와 $c\in F$에 대하여,
① $\left\langle x+z,y \right\rangle=\left\langle x,y \right\rangle+\left\langle z,y \right\rangle$
② $\left\langle cx,y \right\rangle=c\left\langle x,y \right\rangle$
③ $\overline{\left\langle y,x \right\rangle}=\left\langle x,y \right\rangle$
④ $\forall x\in V$, $\left\langle x,x \right\rangle \ge 0$ 이고 $\left\langle x,x \right\rangle=0 \;\;\Leftrightarrow\;\; x=0$ 이다.
이 때 (적어도 하나의) 내적을 갖는 벡터공간 $V$는 '내적공간(Inner product space)'라 한다. $F=\mathbb{R}$ 이면 $V$를 '실내적공간(Real Inner product space)'이라 하고 $F=\mathbb{C}$ 이면 $V$는 '복소내적공간(Complex inner product space)'이라 한다.
내적은 분명 <기하와 벡터>에서도 배웠습니다. 그것도 위에서 정의한 내적의 한 형태입니다. 그 때 내적은 정확히 말하면 Inner product 가 아니고 dot product 라 합니다. 아래에서 한번 더 보겠습니다. 다만 이로부터 융합해서 같이 고려하면 좋을 점은, 먼저 내적은 벡터끼리의 연산이고 결과가 반드시 스칼라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스칼라끼리 내적을 할 수 없고, 스칼라와 벡터를 내적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내적의 결과는 언제나 스칼라지 벡터가 될 수 없습니다. 너무 기초적인 내용들이죠?
박스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내적공간이 되는 벡터공간은 실내적공간이나 복소내적공간 중 하나여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근데 ③은 내적의 순서를 바꾸려면 켤레를 취해야 한다는 것인데, 실내적공간의 경우 켤레가 불필요하므로 ③은
$$\left\langle y,x \right\rangle=\left\langle x,y \right\rangle$$
으로 바뀝니다.
조건 ①, ②를 봅시다. 이는 내적의 첫번째 자리(쉼표 앞에 오는 자리)에 위치한 문자 곧 첫번째 변수에 대한 선형성(linear)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합과 곱을 쪼갤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조심할 것이 있습니다. 두번째 변수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선형성이 먹히지 않습니다. 두번째 변수의 경우 다음과 같이 상수를 앞으로 빼려면 켤레를 취해야 해서 켤레 선형(Conjugate linear)이라고 말합니다.
$$\left\langle x,cy \right\rangle=\overline{c}\left\langle x,y \right\rangle$$
위에서 말했듯이, 실내적공간이면 역시 켤레는 불필요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복소내적공간을 많이 다루게 될 겁니다. 자꾸 켤레가 튀어나오니 독자분들은 자연스레 왜 복소수에선 켤레를 취해야 하냐는 의문이 떠오를텐데, 간단히 처리하긴 쉽지 않은 질문입니다. 노름에 대한 설명에 가서 서서히 떡밥이 풀리게 될 것입니다.
①, ②를 정리하면 내적은 첫번째 변수에 대해서는 단순 선형, 두번째 변수에 대해서는 켤레 선형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물리학(특히 양자역학)에서 내적을 정의할 때는 이 순서를 바꿉니다. 곧 첫번째 변수에 대해 켤레 선형성, 두번째 변수에 대해서 선형성이 만족된다고 정의합니다. 그리고 표기법도 쉼표 대신 바를 넣어서, 브라-켓 표기법을 사용하죠. 실제로 양자역학 책을 보면 켤레를 뜻하는 별표가 항상 앞 벡터에 달려 있을 겁니다. 이 변수 선형 성질 순서를 바꾸더라도 내적을 정의하는데는 무리가 없습니다. 수학책도 경우에 따라 이 순서를 바꾸기도 합니다. 일단 저는 위에 적은 순서, 즉 첫번째 변수에 대한 선형성과 두번째 변수에 대한 켤레 선형성을 만족하도록 정의하고 진행하겠습니다.
③은, 내적에 켤레를 취하는 경우 자리를 바꾼다는 규칙입니다. 이 또한 실수이면 켤레는 필요 없겠죠.
④는 같은 벡터끼리 내적시킬 경우 양의 값이 나온다는 것이며 내적이 0이려면 이 벡터가 0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내적이 양이여야만 한다기 보다, 같은 벡터끼리 내적이란 연산을 수행했을 경우 양수가 나오는 연산만 내적이라 부른다는 것입니다. 정의는 곧 약속임을 꼭 기억하세요.
다음은 세가지 내적의 예시를 소개하겠습니다. 증명은 위 조건을 하나씩 확인해보면 되는 것이라 어렵지 않아 여러분의 몫으로 남길 것이고 결과는 외워야 합니다.
예제 1) $F^n$의 두 벡터 $x=\left( a_1,a_2,\;\cdots\;,a_n \right)\;\;,\;\;y=\left( b_1,b_2,\;\cdots \;, b_n \right)$ 에 대하여
$$\left\langle x,y \right\rangle = \sum_{i=1}^{n}a_i\overline{b_i}$$
라 정의하자. 이를 $F^n$ 의 표준 내적(Standard inner product) 라 부른다. 이렇게 정의한 내적 $\left\langle\; , \;\right\rangle$ 은 내적의 조건 4가지를 모두 만족함을 알 수 있다.
예제 2) $M_n(\mathbb{R})$ 의 두 행렬 $A,B$에 대해 $M_n(\mathbb{R})$ 의 표준내적은
$$\left\langle A, B\right\rangle=\mathrm{tr}AB^T$$
으로 정의된다. 이 역시 내적의 조건 4가지를 모두 만족한다. 이 내적은 '프로베니우스 내적(Frobenius inner product)' 라 부른다. 주의할 점은 위와 같은 내적의 정의는 $M_n(\mathbb{C})$ 에선 성립하지 않는다.
예제 3) 닫힌구간 $\left[ a,b\right] $ 에서의 연속함수 집합 $C\left[ a,b\right] $ 의 두 함수 $f,g$ 에 대하여
$$\left\langle f,g \right\rangle=\int_{a}^{b}f(x)\overline{g(x)}\,dx$$
은 내적이다.
예제 3번은 특별히 중요합니다. 두 함수 사이의 내적은 둘을 곱하고(한 놈은 켤레를 취함) 주어진 구간에서 적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왜 함수 사이의 내적이 곱해서 적분하는 것인지 직관적인 이해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3
예제 1번의 표준 내적을 떠올려 봅시다. 이 방식은 고등학교 수학에서 벡터의 내적을 계산한 방법과 완전히 같습니다. 이 때 벡터의 성분은 첫번째 성분, 두번째 성분,.. 이렇게 이산적으로 존재합니다. 그리하여 $x=\left( a_1,a_2,\;\cdots \; ,a_n \right)$ 와 $y=\left( b_1,b_2,\;\cdots \; ,b_n \right)$ 을 내적하는 경우 똑같은 성분끼리 곱해서 더했습니다.
그런데 연속함수의 경우 성분이 이산적으로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x$값에 따른 하나의 $y$값이 존재하는 형태, 곧 함수입니다. 그러면 이 때는 어떻게 곱하고 더할 수 있을까요? 곱 자체는 함수끼리 곱하면 충분하지만, 더할 때는 연속 성분들을 더해야겠죠? 그 방법은 바로 정적분이죠. 그래서 두 함수를 곱하고 정적분을 하는 것은 표준내적에서, 나아가 고등학교 기하와 벡터에서 연산했던 내적의 셈법과 동일선상에 놓여있는 것입니다. (이 내용은 푸리에 급수를 설명할 때도 간단히 언급했었습니다.)
예제 1이나 3에서 물론 벡터나 함수가 실수 범위로 제한되어 있다면, 켤레는 취할 필요가 없습니다.
2) 내적의 성질
정리($L.A$) 6.1
내적공간 $V$를 생각하자. 벡터 $x,y,z\in V$ 와 스칼라 $c\in F$ 에 대하여 다음이 성립한다.
① $\left\langle x,y+z \right\rangle=\left\langle x,y \right\rangle+\left\langle x,z \right\rangle$
② $\left\langle x,cy \right\rangle = \overline{c}\left\langle x,y \right\rangle$
③ $\left\langle x,\mathbf{0} \right\rangle = \left\langle \mathbf{0},x \right\rangle = 0$
④ $\left\langle x,x \right\rangle = 0 \;\;\Leftrightarrow \;\; x=\mathbf{0}$
⑤ $\forall x\in V\;,\; \left\langle x,y \right\rangle=\left\langle x,z \right\rangle\;\; \rightarrow \;\; y=z$
증명)
① $\left\langle x,y+z \right\rangle = \overline{\left\langle y+z,x \right\rangle}=\overline{\left\langle y,x \right\rangle}+\overline{\left\langle z,x \right\rangle}=\left\langle x,y \right\rangle+\left\langle x,z\right\rangle$
② $\left\langle x,cy \right\rangle = \overline{\left\langle cy, x \right\rangle}= \overline{c}\overline{\left\langle y,x \right\rangle}=\overline{c}\left\langle x,y \right\rangle$
③ $\left\langle x,\mathbf{0} \right\rangle=\left\langle x,\mathbf{0}+\mathbf{0} \right\rangle=\left\langle x,\mathbf{0} \right\rangle+\left\langle x,\mathbf{0} \right\rangle \;\;\; \therefore \; \left\langle x,\mathbf{0} \right\rangle=0$
④ 만일 $x=\mathbf{0}$ 이면, $\left\langle x,x \right\rangle=\left\langle \mathbf{0},\mathbf{0} \right\rangle=0$ 이다.
$x\neq \mathbf{0}$ 이면, $\left\langle x,x \right\rangle >0$ 이다.
⑤ 이것은 모든 $x\in V$ 에 대하여, $\left\langle x,y \right\rangle - \left\langle x,z \right\rangle = \mathbf{0}$ 임과 동치이다. 곧 $\left\langle x,y-z \right\rangle=0$
모든 $x$에 대해 성립하니 $x=y-z$ 라 가정하자. 그러면 $\left\langle x,y-z \right\rangle=\left\langle y-z,y-z \right\rangle=0$ 이므로 $y-z=\mathbf{0}$ 이다.
성질의 ①,② 번을 보면 이로부터 내적은 두번째 성분에 대하여 켤레 선형(Conjugate linear)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정의에 의하면 첫번째 변수에 대해서는 그냥 선형(linear)했죠. 물리학에서는 첫번째 성분에 대해 켤레 선형을, 두번째 성분에 대하여 선형을 취하도록 정의합니다. 순서는 바꾸어도 내적의 정의는 성립합니다.
[참고 문헌]
선형대수학, 청문각, 강경태 및 송석준 지음
Linear Algebra : S.Friedberg, A.Insel, L.Spence, 5e, PEAR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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