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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Quantum Physics)/공리, 해석

양자역학의 공리와 힐베르트 공간(Axiom of Quantum Mechanics and Hilbert space)

by Gosamy 2025.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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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과 수학은 오묘하고도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데, 그렇다고 완전히 같을 수는 없으며 몇몇 중대한 차이점을 지닙니다. 그 중 하나가 공리에 대한 해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수학은 연역적인 논리에 입각한 학문이기 때문에, 정의나 증명을 건전하고 올바르게 건립하기 위해 밑바닥이 되는 공리를 설계하는 작업이 매우 중요시됩니다. 수학자들이 적절히 합의하여 튼튼한 공리를 세우고 나면, 연역 논리에 따라 그로부터 비롯되는 정리가 타당하고 건전하게 유도 및 증명되어,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그 이론이 무너지지 못합니다. 공리가 서 있는 한, 그로부터 연역적으로 유도된 명제들의 참/거짓 여부가 달라지기 매우 어렵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물리학을 포함한 과학은 귀납의 영역이기 때문에, 인간의 경험과 사고, 실험과 지식이 확장됨에 따라 기존의 이론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더라도 불가피하게 수정해야 하는 상황이 생깁니다. 이때 물리학에서는 수학에서처럼 공리를 뒤흔들기 보다는, 수학에서의 '공리'만큼 단단하지 못한 일종의 '패러다임'을 보완하거나 갈아치우는 작업을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뉴턴역학은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정확하지 않은 부분들이 매우 많습니다. 당장 작용·반작용 법칙만 하더라도, 특수상대성이론에서 동시성의 상대성 개념을 적용한다거나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중력의 전달 원리(중력파, 곡률)를 도입하게 되면 이 법칙이 항상 성립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뉴턴 3법칙이라는 일종의 공리를 아예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뉴턴 역학이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의 극한에 해당한다고 상위 범주를 확장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뉴턴역학은 거시세계에서 저속 조건이 성립할 때만 올바르게 자연을 설명한다고 부가 조건을 걸어주는 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물리학에서 '공리'라고 여겨지거나 이 글에서 언급한 것들을 바라볼 때는, 수학에서의 탄탄한 공리와 100% 동일하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예컨대 열역학 제2법칙은 사실상 열 및 통계물리학의 공리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공리라는 것이, 어떤 순수 논리만으로 수학에서처럼 건립되었다기보다, 인류가 아직 그 법칙이 깨지는 상황을 단 한 번도 목도한 적이 없으며, 그것을 뒷받침하는 수많은 실험 결과가 존재하고, 열역학 제 2법칙을 참이라고 믿는 한 그로부터 파생되는 여러가지 열 및 통계물리학의 정리나 원리들이 자연을 올바르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공리라고 불리우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양자역학에도 중요한 공리들이 있으며, 이러한 공리들은 주로 양자역학의 주류 해석인 코펜하겐 해석에 따라 건립된 것입니다. 오늘은 그 중 아주 중요한 몇가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1. 양자역학의 주요 공리

 

1) 양자역학의 주요 공리

 

공리($Q.M$) #1)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은 다음을 공리로 상정한다. 이러한 공리는 수학적인 도구를 빌려[각주:1] 자연 현상을 관찰하여 얻은 다양한 실험의 결과를 근거로 하며, 이 둘을 종합하여 과학자들이 학계에서 공식적으로 설정한 것에 해당한다.

1) 파동함수의 해석(Interpretation of Wave functions)
$\left| \Psi(x,t)\right|^2$ : 확률밀도(Probability density)
$\Psi(x,t)$ : 확률밀도 진폭(Probability denstiy amplitude)
$\left| \Psi(x,t)\right|^2dx$ : 시간 $t$에서 $x\sim x+dx$ 사이에서 입자를 발견할 확률
$\displaystyle\int_{a}^{b}\left| \Psi(x,t)\right|^2 dx$ : 시간 $t$, 위치 $a$ 와 $b$ 사이에서 입자를 발견할 확률


2) 계의 상태(State of a system)
계의 상태는 힐베르트 공간의 원소인 벡터 $| \Psi\rangle$ 로 표현하며, 이것을 파동함수라고 부른다. 힐베르트 공간의 완비성(completeness)[각주:2]에 따라, 
$$\Psi(x,t) = \sum_{n=1}^{\infty} c_n\psi_n(x)e^{\frac{iE_nt}{\hbar}}$$ 와 같이 파동함수를 선형결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

3) 관측량과 연산자(Obeservables and Operators)
모든 물리량은 에르미트 연산자 $T=T^\dagger$ 로 표현되며, 이 연산자의 고유값은 측정 결과를 의미한다.

4) 측정(Measurement)
특정 물리량 $\hat{T}$ 를 측정하였을 때, 계는 연산자의 고유값 $a_n$ 중 하나를 확률적으로 가지게 되며, 측정 후의 상태는 해당 고유값에 대응하는 고유상태 $| \psi_n\rangle$ 로 붕괴한다. 이때 특정 고유값 $a_n$ 을 얻을 확률은 $\left| c_n\right|$ 으로 주어진다.

5) 계의 시간 진화(Time evolution of the system)
계의 시간 진화는 슈뢰딩거 방정식
$$i\hbar \frac{\partial }{\partial t}| \Psi(t)\rangle = \hat{\mathcal{H}}| \Psi(t)\rangle$$ 로 기술한다.

 

양자역학의 해석 태도(코펜하겐 해석)가 달라지게 되면 물론 이것들도 완벽하게 참이라고 상정할 수 없게 됩니다. 하지만 현대 물리학과 양자역학에서는 코펜하겐 해석을 주류로 채택하고 이것은 제가 글을 쓰는 순간까지는 적어도 자연 현상을 가장 그럴듯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수학적으로, 실험적으로 위배하는 이론적 근거의 빈약함이나 반례가 발생하지는 않았습니다.


2. 힐베르트 공간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학부 양자역학을 공부할 때 처음으로 부딪히는 벽이 바로 힐베르트 공간을 어떻게 서술할 것인지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교과서나 수업에서 힐베르트 공간에 관한 구체적인 해석을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일단 몇몇 핵심적인 내용을 먼저 설명하겠습니다. 첫번째, 힐베르트 공간이 무엇인지를 다루는 수학의 과목은 함수해석학(Functional Analysis)입니다. 이것은 해석학의 상위과목이며, 학부 수학과에서 다루지 않는 과목이고 대학원에서 학습합니다. 둘째, 학부 수준의 수학에서 힐베르트 공간에 대한 간단한 이해를 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학부 수준의 수학 과목은 위상수학과 해석학입니다. 둘 다 물리학과에서 다루지 않습니다. 학부 수준의 물리학은 미적분학, 벡터해석, 선형대수학의 수학 과목을 중점으로 요구하지, 위상수학이나 해석학의 개념은 거의 필요하지 않은 편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양자역학의 공리를 건립한 뛰어난 물리학자들은 분명 수학적 도구를 우리보다 훨씬 더 잘 알았을 가능성이 높고, 애초에 그 작업에 수학자들의 도움이 있었을 것이라 예상하는 것은 과장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학부나 대학원 수준에서 양자역학을 물리학도로서 공부할 때 이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하지 않으면 찜찜함이 가시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과 상황 속에서, 이 문제를 조금이나마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양자역학에서 아주 중요한 핵심적인 작업은 아니기 때문에 양자역학을 학습할 때 필수적인 학습 요소가 아닙니다. 간단히 참고하는 용도로 생각하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3. 힐베르트 공간 

 

1) 힐베르트 공간은 완비내적공간이라고 하는데, 내적공간의 개념부터 알아야 한다.

 

수학에서 '공간'이라고 하면은 여러가지 종류가 있으나, 그 중 최상의 것, 즉 전체집합의 개념처럼 모두를 포함하는 가장 일반적인 공간의 개념은 위상공간입니다. 위상공간이 무엇인지는 특별히 중요하지 않습니다. 위상공간에서 만일 거리를 부여할 수 있으면, 그 공간은 거리공간이라고 합니다. 

 

 

정의($T.P$) 2-1)
집합 $X$ 위에서의 '위상(topology)'이란, 아래의 세 조건을 만족하는 $X$ 의 멱집합 $\mathcal{P}(X)$ 의 한 부분집합족을 말하며 $\mathcal{T}$ 라 표현한다.
① $\emptyset, X \in \mathcal{T}$
② $\mathcal{T}$ 의 임의의 부분집합족의 원소들의 합집합은 $\mathcal{T}$ 에 포함되어 있다 :
$$\displaystyle \bigcup_{\alpha\in I}^{}T_{\alpha} \in \mathcal{T}$$ ③ $\mathcal{T}$ 의 임의의 유한 부분집합족의 교집합은 $\mathcal{T}$ 에 포함되어 있다 : 
$$\displaystyle \bigcap_{i=1}^{n}T_{i} \in \mathcal{T}$$ 이때 집합 $X$ 는 '위상공간(Topological space)'라 말하고 $(X,\mathcal{T})$ 라 표기한다.

정의($T.P$) 3-1) 거리공간
집합 $X$ 에 대해 함수 $d: X\times X \longrightarrow \mathbb{R}$[각주:3] 를 생각하자. 임의의 $x,y,z\in X$ 에 대해 만일 $d$ 가 다음의 세 조건
D1) $d(x,y)\geq 0$, 그리고 $d(x,y)=0 \;\Longleftrightarrow \; x=y$
D2) $d(x,y)=d(y,x)$
D3) 삼각부등식 : $d(x,z)\leq d(x,y)+d(y,z)$
을 모두 만족시키는 경우, 함수 $d$ 를 $X$ 의 '거리(metric)' 또는 '거리함수(metric function)'이라 부르고, $d(x,y)$ 는 $x$ 에서 $y$ 까지의 '거리(distance)'라고 한다. $d$ 가 정의된 집합 $X$ 는 '거리공간(metric space)'라 하며 $(X,d)$ 로 표기한다.

 

거리공간의 조건은 그래도 한 번 살펴봅시다. 세 공리를 확인해보게 된다면, 결국 거리공간은 거리를 정의하기 위해서 필요한 세 가지 조건을 말하고 있는데, 거리는 반드시 0이거나 양수여야 하고, 0일 때는 두 점이 같을 때만 해당하며(D1), 두 점 사이의 거리를 재는 순서는 중요하지 않고(D2), 삼각부등식을 만족(D3)해야 한다는 것입니다.[각주:4]

 

거리공간은 딱 위와 같이만 해석하면 아주 충분합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벡터공간내적공간입니다.

 

 

체 $F$에서 집합 $V$의 원소들이 다음과 같이 정의된 합(Sum)과 스칼라 곱(Sclar multiplication)에 대해 다음 8가지 공리를 만족할 때, $V$를 체 $F$에 대한 '벡터공간(Vector space)', 정확히는 '$F$-벡터공간(F-vector space)'이라 부른다.

$A1)$ 덧셈에 대한 교환법칙 : $\forall \,x,y\in V$ 에 대하여 $x+y=y+x$
$A2)$ 덧셈에 대한 결합법칙 : $\forall \,x,y,z\in V$ 에 대하여 $(x+y)+z=x+(y+z)$
$A3)$ 덧셈에 대한 항등원 : $\forall \, x\in V$ 에 대하여 $x+0=0+x$ 를 만족시키는 $0\in V$ 의 존재

$A4)$ 덧셈에 대한 역원 : $\forall \, x\in V$ 에 대하여 $x+y=0$ 을 만족시키는 $y\in V$ 의 존재
$A5)$ 곱에 대한 항등원 : $\forall \,x\in V$ 에 대하여 $1x=x$ 
$A6)$ $\forall\, a,b\in F$ 와 $\forall\, x\in V$ 에 대하여 $(ab)x=a(bx)$
$A7)$ 스칼라 분배법칙 : $\forall \,a,b\in F$ 와 $\forall \,x\in V$ 에 대하여 $a(x+y)=ax+ay$
$A8)$ 벡터 분배법칙 : $\forall \,a,b\in F$ 와 $\forall \,x\in V$ 에 대하여 $(a+b)x=ax+bx$

정의($L.A$) 6-1) 내적의 정의
$F$-벡터공간 $V$에서 정의된 내적(Inner product)은 $\left\langle x,y \right\rangle$ 로 표기하며 $V$의 임의의 벡터 $x$와 $y$의 순서쌍을 $F$에 관한 스칼라에 대응시키는 사상
$$\left\langle \;\;,\;\; \right\rangle\;:\;V\times V\rightarrow F$$ 을 가리키며, 다음 네 조건을 만족한다. 임의의 $x,y,z\in V$와 $c\in F$에 대하여,
① $\left\langle x+z,y \right\rangle=\left\langle x,y \right\rangle+\left\langle z,y \right\rangle$
② $\left\langle cx,y \right\rangle=c\left\langle x,y \right\rangle$
③ $\overline{\left\langle y,x \right\rangle}=\left\langle x,y \right\rangle$
④ $\forall x\in V$, $\left\langle x,x \right\rangle \ge 0$ 이고 $\left\langle x,x \right\rangle=0 \;\;\Leftrightarrow\;\; x=0$ 이다.
이 때 (적어도 하나의) 내적을 갖는 벡터공간 $V$는 '내적공간(Inner product space)'라 한다. $F=\mathbb{R}$ 이면 $V$를 '실내적공간(Real Inner product space)'이라 하고 $F=\mathbb{C}$ 이면 $V$는 '복소내적공간(Complex inner product space)'이라 한다.

 

내적공간은 벡터공간의 일종입니다. 그리고 내적공간은 거리공간의 일종이기도 합니다. 거리공간 포스팅 글의 마지막에서도 설명했듯이, 모든 내적공간은 거리공간이면서 벡터공간이고 동시에 위상공간에 해당합니다. 

 

내적은 왜 필요할지를 잠시 생각해봅시다. 내적을 굳이 왜 정의하는 것일까요? 내적은 길이를 재고, 각의 크기를 재는데 사용되는 도구입니다. 따라서 기존의 벡터공간에서 길이의 개념과 각의 크기를 측정하기 위해 내적의 개념을 도입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양자역학에서는 내적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각주:5] 일단 파동함수들을 기술할 집합이 내적공간은 되어야 한다는 것까지는 납득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2) 그렇다면 거리공간은 왜 언급한 것일까?

 

잠시 제가 왜 거리공간을 설명하였을지에 대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말은 즉슨, 내적공간을 설명하기 위해 벡터공간만 알고 있으면 충분한데 왜 거리공간까지 꺼내어 들었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힐베르트 공간을 완비내적공간이라고 표현할 때, 이 '완비(completeness)' 의 개념을 설명하려면 거리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완비'의 뜻은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정의($T.P$) 3-?) 완비적이다(complete)
거리공간 $(X,d)$ 에 대하여 $X$ 에 존재하는 모든 코시수열이 항상 $X$ 의 원소로 수렴하면, 거리공간 $(X,d)$ 는 완비적(complete)이라고 한다.

 

그러면 다시 꼬리를 물고 코시수열(Cauchy sequence)가 무엇인지를 알아야겠지요. 하지만 다행히도, 해석학에서는 아주 멋진 다음의 정리가 있습니다.

 

 

정의($R.A$) 2-3) 코시수열
실수열 $\{ a_n\}$ 이 만일 임의로 주어진 $\varepsilon >0$ 에 대해 어떤 $N\in\mathbb{N}$ 이 존재하여
$$n,m\geq N \; \Longrightarrow \; \left| a_n-a_m \right| < \varepsilon$$ 이 성립하면, $\{a_n\}$ 을 '코시수열(Cauchy sequence)'이라고 한다.

정리($R.A$) 2.1)
실수열 $\{ a_n\}$ 이 주어졌다고 하자. $\left\{ a_n \right\}$ 이 수렴할 필요충분조건은 $\left\{ a_n \right\}$ 이 코시수열인 것이다.

 

양자역학을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수열의 수렴이 무엇인지 알 것이고, 미적분학을 학습하였으니 수열의 수렴에 관한 $\varepsilon -N$ 논법에 대해 들어봤을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당장 이해할 필요가 없고, 그냥 어떤 수열이 코시수열이라고 함은 그것이 '수렴하는 수열'이라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매우 충분합니다. 그렇다면 수열을 구성하는 값들은 무엇이냐? 라고 했을 때 그 값은 거리공간 $(X,d)$ 의 원소들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정확합니다. 다시말해 거리의 개념을 부여할 수 있는 집합에 속한 원소들로 구성된 수열을 어떻게 만들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수렴한다는 것이지요.

 

 

3) 완비의 마지막 조건은 '내부로 수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하나입니다. 힐베르트 공간이란 완비내적공간이라는 것인데, 이는 ① 내적이 정의되어 있고, ② 완비적이라는 것입니다. 이때 완비의 조건을 보면, 그 수열이 단순히 수렴해야 할 뿐만 아니라, '거리공간의 원소로 수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수렴하는 극한값이 거리공간 내부에 속해 있어야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관문이 이것을 해석하는 일입니다. 수렴값이 집합의 내부에 존재한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에 관한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다분히 위상수학적 개념입니다. 사실, 위상수학에 의하면 다음 명제는 참입니다.

 

 

1. 수열의 극한값은 유일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Hausdorff 공간에서만 수열의 극한값이 유일해진다.)

2. 어떤 수열의 극한값을 찾을 때, 그 극한값은 수열을 구성하는 원소들을 뽑은 집합에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2번입니다. 아니, 이게 무슨 말이라는 것입니까? 예를 들어 다음의 예시를 관찰해 봅시다.


예제 1) $\mathbb{R}$ 의 부분집합인 열린구간 $(0,1)$ 은 완비적인가?

 

Sol) 그렇지 않다.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 반례를 제시해보자. 즉, $(0,1)$ 에서 적당히 숫자를 뽑아 만든 수열을 만들었을 때, 그 수열의 극한값을 $L$ 이라고 하면 $L\notin (0,1)$ 임을 보이면 충분하다. 우리의 수열은

 

$$\left\{ \frac{1}{n} \right\}_{n=1}^{\infty} = \left\{ 1,\frac{1}{2},\frac{1}{4},\frac{1}{8},\cdots \right\}$$

으로 뽑는다. 그러면 이것의 극한값은 자명히 $L=0$ 이고, $0\notin (0,1)$ 에 해당한다. 따라서 열린구간 $(0,1)$ 은 완비적이지 않다. 수렴하는 수열(= 코시수열)의 극한값이 $(0,1)$ 에 속하지 않는 반례를 찾았기 때문이다. $_\blacksquare$

완비적이기 위해서는 모든 수렴하는 수열에 대해서 그것의 극한값이 다시 자신의 집합(그리고 그 집합은 거리공간)에 포함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는 반례가 존재하니 완비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4) 힐베르트 공간을 선택한 까닭

 

그렇다면 이제 힐베르트 공간을 다음과 같이 아주 간단히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아래에서 집합 $X$ 는 곧 힐베르트 공간이 될 집합을 의미하며, 파동함수들이 사는 집합입니다.)

 

 

① 내적을 정의할 수 있다. 곧 내적공간이다. 그리고 모든 내적공간은 거리공간이니 거리공간이기도 하다.
② (힐베르트 공간으로 불려질) 집합 $X$ 에서 임의의 원소를 뽑아 만든 수열은 반드시 수렴한다. 즉 코시수열이다.
③ 그러한 수열의 극한값도 반드시 $X$ 에 포함되어 있다

 

사실, 여기까지의 논리를 전개하는데 물리학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건 그냥 순수 수학적인 개념들일 뿐이기 때문이죠.

 

 

 

5) 왜 하필, 힐베르트 공간인가?

 

그렇다면 이제 물리학자들이 양자역학의 파동함수가 사는 집합을 굳이 굳이 수많은 공간과 집합 중에서 왜 힐베르트 공간으로 뽑았는지 위 세 명제를 토대로 검토해 봅시다.

 

 

① 양자역학은 내적을 필요로 한다.

 

양자역학에서 내적은 적분으로 정의되며, 적분 형태로 내적공간의 공리에 맞추어 정의된 내적은

 

$$\left\langle \psi | \phi \right\rangle = \int_{-\infty}^{\infty}\psi^*\phi \,dx$$

에 해당합니다.

 

양자역학에서 내적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여러가지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을 뽑자면 바로 우리에게는 '에르미트 연산자(Hermitian operator)'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고유값 방정식을 풀어서 나온 고유값을 물리량으로 해석하는 것이 양자역학의 공리인데, 고유값 방정식을 푸는 일 자체에서는 내적공간이 전혀 필요 없습니다. 고유값 방정식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연산자가 단순히 선형 연산자이기만 해도 충분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물리량을 복소수로 만들면 절대로 안되기 때문에 모든 측정된 물리량은 실수라는 조건이 필요하겠죠? 그런데 놀랍게도 선형대수학에 의하면 에르미트 연산자를 정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벡터공간에 내적이 부여되어 있어서, 내적공간이 필요합니다!

 

 

$T$ 가 내적공간 $V$에서 정의된 선형연산자(선형변환)이라 하자. 만일 $T$가
$$T=T^{\dagger}$$ 를 만족하면, $T$ 는 '허미션 연산자(Hermitian operator)' 또는 '자기수반 연산자(Self-adjoint operator)' 이라 부른다. 고로 내적의 관점에서 이해하면
$$\left\langle v\mid T(u) \right\rangle=\left\langle T(v)\mid u \right\rangle$$ 인 연산자 $T$를 뜻한다.

또한 $n\times n$ 정사각행렬 $H\in M_n(F)$ 가
$$H=H^{\dagger}$$ 를 만족하는 경우에도 $H$를 '허미션 행렬(Hermitian matrix)' 또는 '자기수반 행렬(Self-adjoint matrix)' 라 부른다.

 

고로 파동함수는 일단 반드시 내적공간의 원소가 되어야만 합니다.

 

뿐만 아니라 또 하나 중요한 조건은 정규화(normalization)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파동함수의 '규격화(Normalization)'이란 확률밀도함수의 제곱을 전 구간에 대하여 적분하였을 때 반드시 1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int_{-\infty}^{\infty}\left| \Psi(x,t) \right|^2dx=1$$ 모든 파동함수는 이 조건을 만족시켜야 하며, 이러한 적분 작업을 하는 것을 '파동함수를 규격화한다'고 말한다. 이는 입자가 주어진 전체 영역 내에서 발견될 확률이 1임을 뜻한다. 입자가 영역 안의 어디에 있는지 특정할 수는 없어도 일단 존재하기는 해야 한다는 뜻이다.

 

확률 진폭에 관한 해석을 하려면 정규화 조건을 하여 전체 확률이 1이라는 것을 규정해야 하는데, 그러면 내적(적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두가지 근거로 인하여, ①을 해결했다고 볼 수 있겠지요?


② 왜 완비성 조건이 필요한가?

 

양자역학에서 상태는 시간에 따라 변화합니다. 슈뢰딩거 방정식을 보면 알 수 있지요. 시간에 항상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i\hbar \frac{\partial }{\partial t}| \Psi(t)\rangle = \hat{\mathcal{H}}| \Psi(t)\rangle$$

 

그러면 상태가 점진적으로 시간에 따라 진화하여 변화가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인데, 그 결과 시간에 따라 발산한다는 결과가 발생하면 안되겠지요. 그러니까 측정을 하든 뭘 하든 어떤 상태를 관찰하는데, 시간이 흐르다보면 그 결과가 무한으로 발산하는 수학적 결과와 연결되도록 방치하면 안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수열이 수렴할 조건이 일단 필요합니다.

 

또 다른 완비의 조건인 수열의 수렴하는 극한값이 집합 내부에 존재해야만 할 이유는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양자역학의 공리에 따라, 측정을 하면 상태가 붕괴하여 특정한 고유상태로 변환된다는 점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hat{T} | \Psi \rangle = c_n | \psi_n \rangle$$

 

그런데 붕괴한 상태가 내가 보고자 하는 상태 공간을 벗어나게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측정 후에 상태가 불완전한 바깥 공간으로 나가버린다는 모순이 발생하면 안된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측정을 한다고 해서 갑자기 관찰이 불가능해진다거나, 입자의 물리량이나 위치 등이 우리의 관찰 세계를 벗어나는 것은 결코 발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일 측정 후의 결과가 공간을 벗어나게 된다는 것은, 확률 진폭이 정확하게 계산되지 않아서 방사성 동위 원소의 붕괴 반감기의 예측이 불가능해진다거나, 양자 터널 효과를 더이상 설명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게다가 스핀을 예로 들더라도 모순이 엄청나게 발생합니다. 스핀은 측정을 하면 특정한 고유상태로 붕괴되는데, 고유상태를 힐베르트 공간의 원소로 취급하지 않아 그 집합이 힐베르트 공간을 벗어나는 지점으로 수렴하게 된다면, 스핀을 측정 후 재측정해도 이전 결과와 일관성이 사라지거나 존재할 수 없는 스핀 상태가 발생할 수도 있지요. 심지어 슈뢰딩거의 고양이 문제에서도, 죽음 or 삶이라는 두 결과를 벗어나 제 3의 선택지가 힐베르트 공간 바깥에 존재하여 그쪽으로 고유상태가 붕괴한다는 것이니, 완전 물리학적인 해석을 아예 할 수 없는 잘못된 수학적 기반을 선택하는 자살 행위나 다름이 없습니다.

 

살아있지도, 죽어있지도 않고, 좀비가 되는 제 3의 선택지가 있다는 말인가? 없다!

 

따라서, 양자역학의 파동함수가 사는 집합을 힐베르트 공간으로 과학자들과 수학자들이 '선택'한 것이며, 그 기반에는 실제로 물리학의 자연 현상을 설명하고 실험에서 발생한 결과를 우아하게 표현할 수 있는 수학적 도구를 탐색했던 행위가 녹아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파동함수의 집합이 힐베르트 공간의 원소라는 것은 공리라고 여겨지기는 하나 물리학에서 공리를 바라보는 관점에 의거하여 그것은 다분히 인간의 의도적인 행위였다는 것입니다. 물리학에서는 언제나 자연 현상을 수학으로 기술하고 그때 필요한 수학적 도구를 적절히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선택 대상에 여러가지 공간(집합) 중에서 위와 같은 까닭으로 힐베르트 공간이 선정당한 것입니다.

 

여기까지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학부든 대학원이든 더이상 양자역학의 파동함수가 힐베르트 공간의 원소라는 문장을 보고도 꺼름칙하고도 불쾌한 기분과 작별인사를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첨언하자면, 힐베르트 공간은 무한차원 벡터공간이고, 기저벡터의 개수가 정말 무한할지에 관한 의문이 남을 수도 있습니다. 수학에서 그것은 초른의 보조정리로부터 증명 가능한 명제입니다. 다시말해, 

 

$$\Psi(x,0)=\sum_{n=1}^{\infty}c_n\psi_n(x)$$ 

 

이렇게 표현하고자 할 때 정말 기저벡터들 $\psi_n(x)$ 가 무한히 많을 수 있냐는 것이지요. 일단 양자역학에서 고유상태는 무한히 많이 존재할 수 있어서 물리학적인 해석은 가능하고, 수학적으로도 무한차원 벡터공간의 임의의 원소 $\Psi(x,0)$ 을 무한히 많은 기저 $\psi_n(x)$ 들의 선형결합으로 표현 가능하다는 것이 증명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집합론을 공부하면 알 수 있습니다.

 

 

  1.   이 말은 양자역학이 수학적 기반도 갖추고 있음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만일 힐베르트 공간을 기술하기 위한 수학의 해석학, 위상수학, 대수학 등의 개념이 충분하지 않았다면 양자역학이 탄생하는데 거대한 난관에 봉착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지요. [본문으로]
  2. 완비성이 무엇인지는 아래에서 충분히 설명할 것입니다. 여기서는 단순히 벡터공간의 임의의 원소를 벡터공간의 기저들의 선형결합으로 쓸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본문으로]
  3. 여기서 $d$ 의 공역은 사실상 아래의 D1) 조건으로 인해 음이 아닌 실수의 집합, $[0,\infty)$ 으로 잡아 정의하는 경우도 있음. [본문으로]
  4. 거리를 더 추상화하여 측도론을 꺼내들 수 있겠지만, 그런 무례한(?) 짓은 범하지 않을 것입니다. [본문으로]
  5. 양자역학에서 왜 내적이 꼭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자세히 다룰 것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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